Dec 1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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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의 지리산 종주기(2편)  천왕봉에 오르다

초보의 지리산 종주기 2편

 

1편 철산역-남부터미널-원지터미널-농협-중산리주차장-개조심-중산리주차장

2편 중산리주차장-로터리대피소-법계사-천왕봉

 

로터리 대피소에서 생각지도 않은 일이 생겼다. 우리가 늦게 도착하여 모든 방을 다 남자들에게 줬다는 것이다. 남쪽 지방 남고 학생들이 선생님들과 함께 점령하고 있었던 것이다. 혼숙하는 방법이 있고 100미터 위에 있는 법계사에서 자는 방법도 있다는 것이다. 아들 같은 남학생들하고 자는 것도 괜찮겠지 싶지만 우린 법계사를 택했다. 로터리에서 옥수수 스프와 감자밥을 해 먹고 잘생긴 대한민국 고등학생들 구경 좀 하다가 법계사에 도착하니 절에서 행정보시는 분이 친절히 대해주셨다. 세상에나 이불도 있고 온돌바닥이었다. 이런 횡재가!

대피소는 담요 2장과 서로의 온기로 몸을 데우는 곳이다. 벽에 라디에이터가 있긴 하지만 온돌과는 비교가 안 되는 것이다

 

법계사에 다른 여자 등산객 두 분이 미리 와 있었는데 지리산은 수시로 다니는 분들이었다. 날씬하고 탄탄한 몸 세련된 등산장비가 알려주었다.

대장은 사교성이 좋아서 이것저것 묻더니 우리도 그 분들을 따라서 천왕봉에 해 뜨는 것을 보러 가자는 것이다. 종주 계획에 원래 그건 없었다. 7시쯤 여유있게 출발하면 절에서 밥도 준다는데 밥도 포기하고 비장한 마음으로 새벽에 조용히 법계사를 나섰다. 아주 베테랑 분들을 만나서 생각지도 않게 새벽 산행을 하게 되어 역사를 새로 쓰게 된것이다

 

우린 걸음도 느리고 길도 모르니 저 분들보다 앞에서 걷자고 등산화 메며 서두르는 사이 이 분들은 얼마나 동작이 빠른지 우리가 몇걸음 걷는 사이에 방향만 알려주더니 곧 가버렸다. 지체하면 해뜨는 걸 못 볼까봐 그런 것 같았다.

새벽 산행이라니 너무나 깜깜했는데 아래 로터리에서도 고등 학생들이 천왕봉에 오르기 위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우리가 재네들보다 먼저 가면 된다. 우리가 뒤로 처지게 되면 더 힘들것이고 뒤에 사람이 없다면 얼마나 무섭겠는가 . 길도 어둡고 무섭기도 해서 잽싸게 출발했다. 열 댓명 명 정도 되는 아이들이 줄 서서 선생님으로부터 주의사항을 듣는 것 같았다. 얼마 가지도 못해 결국 우린 추월 당했다. 대체로 조용히 산을 타는 모습이다. 이들도 처음 산행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등산복 등산화 등산가방 지팡이 2개씩 모두 갖추었고 또 모두 새거였다. 대체로 부유해 보이고 공부도 잘할 것 같은 얌전해 보이는 학생들이었다. 그래도 돌도 씹어먹는다는 고등학생들이니 얼마나 빠르겠는가?

그런데 슬픈 장면이 포착됐다 옷은 새건데 한 학생이 007가방을 든 것이다. 너무 궁금해서 물어보니 부르스타였다. 헐 버너는 미처 장만을 못한 것. 정말 정말 희한한 일이다. 저걸 들고 종주라니. 선생님도 괜챦냐고 묻는 걸 보니 이때쯤 알았나 보다. 가정통신문에 산악용 버너를 준비하라고 안 했나 보다.

 부르스타.png

추월당하니 순식간에 떨어지게 되어 또 외로이 우리 둘만 산을 탔다. 정말 가팔랐다. 슬로우비디오처럼 올랐던 기억이 난다. 지팡이는 한 개씩 있었는데 그냥 네발로 기어 올라갔다. 경사가 급해서 무섭기도 하고 위를 봐도 아래를 봐도 어지러웠고 포기 하고 내려가자니 더 무서워서 진퇴양난이었다.

간신히 천왕봉에 도착하니 무지 많은 사람들이 좋은 자리 놓고 신경전을 은근 벌이고 있었다. 날은 이미 훤했는데도 다행히 아직 해가 안 떴나 보다. 나도 남들처럼 엉거주춤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뒤에서 누가 부른다 “뭐지?” “머리 좀 치워요”. 끙끙대며 가파른 길을 올라 말 할 힘도 없이 첫 해를 기다리며 숭고한 마음으로 앉아있는 천왕봉에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덕담도 아니고 이런 영양가 없는 말을 처음 들을 줄이야. 뒤에 삼각대 카메라 렌즈가 내 머리를 지나는 지점에 해가 뜨는가 보다. 해가 어느 지점에서 뜨는지 내가 아냐고? 다 비둘기처럼 저쪽 보고 앉길래 나도 저쪽 보고 앉았는데 하여튼 나는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한 칸 아래로 내려갔다. 다들 자리 부심이 있을 줄이야.

 해가 도대체 어디서 뜨는지 하늘은 넓어 어디를 주시하는지도 모른 채 온 하늘을 이쪽 저쪽 다 쳐다보면서 앉아있었다. 결국 해 뜨는 걸 보지 못했다 구름이 많이 껴서이다. 난 또 나만 못 본 줄 알았네. 삼각대 아저씨는 무겁게 사진 장비 들고 왔는데 참 쌤통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마음을 나쁘게 먹어서인지 난 곧 큰 사고를 당했다.

 

(다음 3편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