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대의 종언..‘탈세계화’ 시대 온다
4월 2일, 트럼프 대통령은 예고한 대로 모든 수입품에 10%의 관세를 부과하고, 대다수 국가를 대상으로 17%에서 49%에 이르는 ‘상호주의 관세’를 발표하며 국제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4월 8일,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 관세' 정책을 더욱 강화해 전 세계 무역 파트너들에게 10%에서 최대 50%에 이르는 관세를 부과했으며, 특히 중국에 대해 더욱 강력한 압박을 가했다.
이에 4월 9일, 중국이 34%의 보복 관세를 부과하자 미국은 중국산 제품에 추가로 50%의 관세를 부과해 총 관세율이 104%에 달했다. 이어서 4월 10일, 미국은 대중 관세를 125%로 즉시 인상하고 상호 관세 정책을 90일 동안 유예한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 이후 미국 주식 시장은 이틀 연속 10% 넘게 급락했으며, 국제 사회는 극명하게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일부 국가는 미국에 ‘무관세’를 제안하는가 하면, 즉각적인 보복 관세로 맞서는 국가, 그리고 협상을 통해 해법을 모색하려는 국가 등 다양한 움직임이 나타났다.
미국 관세 역사의 간략한 조망

미국의 ‘상호주의 관세’ 정책의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잠시 과거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건국 초기 미국은 취약한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높은 관세를 유지했으며, 1791년 <해밀턴 보고서>와 1816년 <관세법>이 대표적인 예였다.
하지만 19세기 후반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제조업 보호를 원하는 북부와 낮은 관세를 선호하는 남부 간의 의견 충돌이 있었다. 1930년의 <스무트-홀리 관세법>은 사상 최고 수준의 관세를 부과하며 국제적인 보복을 야기했고, 이는 미국의 수출입 급감으로 이어졌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은 국제 질서의 주도국으로서 자유 무역을 장려하며 관세를 점진적으로 낮췄다.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과 <북미 자유 무역 협정(NAFTA)>, 세계무역기구(WTO) 설립 등이 이러한 노력의 결과였다.
글로벌화 시대에 미국 기업들은 저렴한 수입품을 통해 이익을 얻었고, 이는 낮은 관세 정책을 지지하는 기반이 되었다. 현재 미국의 평균 관세율은 역사적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지만, 유럽연합(EU) 등 일부 국가들은 특정 품목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있으며, 중국은 관세가 아닌 다양한 무역 제한 조치 등의 비관세 장벽을 높여 수입을 제한하는 실정이다.
미국은 오랫동안 글로벌 리더로서 낮은 관세를 유지하며 세계 경제 성장과 글로벌화를 이끌었지만, 이제 ‘일방적인 저관세’ 정책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세계 2, 3위 경제 대국인 중국과 EU가 미국의 낮은 관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 상황에서, 상호주의에 기반한 관세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관세의 배경과 의미

2025년 3월 6일 기준, 미국의 국가 부채는 약 36조 달러로 GDP의 120%에 달하는 심각한 수준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은 이러한 상황에서 비롯된 일종의 ‘쇼크 요법’으로 해석될 수 있다.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Axios)는 트럼프의 판단이 수십 년간의 경제학 연구보다 우월하다고 믿어야 이 관세 정책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비판했지만, 현실적으로는 기존 경제 정책이 이미 한계에 다다랐고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단기적으로 국가 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입 증대와 지출 감축이 필수적이며, 트럼프는 이 중 수입 증대 방안으로 관세 정책을 선택한 것이다. 이는 기존 정책을 유지하다 경제 붕괴를 맞느냐, 아니면 고통을 감수하고 회복을 시도하느냐의 선택지로 볼 수 있다.
탈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트럼프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와 같은 다자간 협약보다는 양자 협상을 선호하며, 각국의 대응 방식은 향후 국제 질서에서 어떤 편에 설 것인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아르헨티나, 이스라엘, 베트남, 대만 등은 미국과의 무관세 협상을 원하거나 진행 중이며, 인도, 멕시코, 캐나다, 일본, 한국, 영국 등도 관세 인하 또는 무관세 협상을 통해 대응하려는 의향을 보이고 있다.
백악관은 이미 50여 개국이 미국에 관세 협상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등은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며 보복은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고, EU는 보복 관세를 고려 중이지만 내부 조율 단계에 있다. 반면, 중국은 4월 10일부터 보복 관세를 시행하고 미국 기업에 대한 제재를 가하며 강경하게 맞서고 있다.
진정한 동맹국들은 미국의 관세 인상 철회 대가로 자체 관세를 감축하고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려 할 것이다. 경제적으로 미국 의존도가 높은 베트남, 캐나다, 멕시코, 그리고 자동차 및 전자 제품의 대미 수출 비중이 큰 한국과 일본 역시 유사한 대응을 고려할 수 있다.
하지만 가장 강력하게 반발하는 중국은 이미 모든 미국 상품에 상호주의 관세를 부과하고, 관련 기업 제재를 통해 무역 전쟁을 격화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은 WTO에 미국의 추가 관세 부과를 제소했지만, 탈세계화를 추구하는 트럼프 정부에게 WTO는 큰 의미가 없다.
‘새로운 보안관’ 등장과 국제 질서의 재편

트럼프 관세 정책의 장기적 목표는 국내 핵심 산업 보호와 제조업의 본국 회귀 촉진에 있다. 특히 세계의 공장인 중국이 주요 타겟이며, 높은 비관세 장벽을 유지하는 중국이 가장 양보를 하기 어려울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 체제의 특성상 정권 유지가 최우선 과제이기 때문에, 미국의 압박에 쉽게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흥미로운 점은 글로벌화의 상징과 같았던 다보스 포럼의 창립자 클라우스 슈밥 회장이 4월 3일 이사회 의장직 사임 절차를 시작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는 한 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해석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고위 관료들이 언급한 “새로운 보안관이 등장했다”는 표현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형성된 국제 질서가 변화를 맞이하고 있으며, 새로운 규칙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세계가 이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말이다.
결론: 새로운 국제 질서의 도래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단순한 무역 수지 개선이나 특정 산업 보호를 넘어, 수십 년간 지속된 글로벌 중심의 국제 질서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으로 해석될 수 있다.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일방적인 저관세’ 정책을 유지하며 글로벌 경제의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고수하지 않고, 자국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새로운 규칙을 국제 사회에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각국의 상이한 대응은 이러한 변화하는 국제 질서 속에서 각자의 위치를 설정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의 동맹국들은 관세 인하 협상을 통해 미국의 압박을 피하고 관계를 유지하려 할 것이며, 경제적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은 생존을 위해 유연하게 대처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중국의 강경한 보복은 미국과의 전면적인 대립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며, 기존 글로벌 질서의 수혜자로서 미국의 탈세계화 시도에 강력히 저항하며 자체적인 영향력 확대를 모색할 것이다.
클라우스 슈밥 회장의 사임은 과거 글로벌 시대의 종언을 상징하며, 새로운 형태의 국제 질서가 도래하고 있음을 예고하는 중요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